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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원고의 아날로그 변신기

by 브랜딩미 2025. 8. 13.

AI 시대가 도래한 이후, 글쓰기는 더 이상 작가만의 전유물이 아니게 되었습니다.
몇 개의 키워드와 조건만 입력하면 AI는 짧은 시나리오부터 장편 소설까지 순식간에 완성해 줍니다. 하지만 화면 속 글은 클릭 몇 번이면 사라지고, 무한히 복제되는 디지털 파일의 특성상 **‘단 하나뿐인 소장품’**으로서의 가치는 상대적으로 약합니다.

그래서 저는 AI가 만든 시나리오를 종이책으로 출간하는 프로젝트를 시작했습니다.
AI의 창작물에 인간의 손길을 더해 ‘책’이라는 물리적 형태로 바꾸는 작업이죠. 더 나아가, 인쇄 글씨체를 필사본처럼 구현해 디지털과 아날로그의 매력을 모두 담아내고자 했습니다.

이 글에서는 AI 원고 준비 → 디자인과 제본 과정 → 완성 후 소장 가치라는 세 단계로, 그 과정을 자세히 풀어보겠습니다.

 

 

디지털 원고의 아날로그 변신기
디지털 원고의 아날로그 변신기

AI 시나리오 원고 준비하기

 

첫 단계는 AI를 이용해 시나리오를 만드는 것입니다. 저는 ChatGPT와 같은 대화형 AI에게 다음과 같은 조건을 제시했습니다.

-> “배경은 근미래, 장르는 로맨스와 미스터리 혼합, 등장인물은 세 명, 결말은 반전”

AI는 몇 분도 안 되어 20페이지 분량의 단편 시나리오를 완성했습니다. 하지만 그대로 인쇄하기보다는 편집자의 시선이 필요했습니다. AI가 쓴 대사는 때때로 너무 기계적이거나 감정선이 부자연스러운 경우가 있었기 때문에, 문장 구조를 다듬고 불필요한 장면을 삭제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AI를 단순한 ‘작가’가 아니라 아이디어 파트너로 활용한다는 관점이 중요했습니다. AI는 구조와 아이디어를 제시하고, 인간이 그것을 맥락과 감성으로 보완하는 식입니다. 이렇게 완성된 시나리오는 원고지로 환산하면 약 60매 분량이 되었고, 종이책 제작을 위한 디지털 원고 파일이 준비되었습니다.

 

 

필사본 느낌을 살린 디자인과 제본 과정

 

원고가 준비되면, 이제 종이책으로 만드는 작업이 시작됩니다. 저는 여기서 ‘필사본’의 감성을 살리는 데 집중했습니다.

먼저 글씨체는 컴퓨터 기본 폰트 대신, 실제 만년필로 쓴 듯한 손글씨 폰트를 사용했습니다. 자간과 행간도 인쇄용으로 최적화하되, 약간의 불규칙성을 남겨 사람이 직접 쓴 것 같은 인상을 주었습니다.

종이는 너무 하얀 A4용지 대신, 미색 모조지를 선택했습니다. 손에 닿았을 때 부드럽고, 시간이 지나면 조금씩 색이 바래는 종이가 좋았습니다. 표지는 인물 일러스트와 시나리오 주요 장면을 AI 이미지 생성기로 제작했는데, 그 결과물 위에 수작업으로 잉크 터치를 더해 디지털과 아날로그의 혼합미를 구현했습니다.

제본 방식은 무선제본이 아닌 실제 실로 엮는 제본을 선택했습니다. 덕분에 책을 펼쳤을 때 자연스럽게 평평하게 놓이고, 오래 보관해도 쉽게 떨어지지 않습니다. 마무리로 책 뒷면에 ‘1/1 Limited Edition’이라는 문구를 찍어, 이 책이 세계에 단 한 권뿐임을 강조했습니다.

 

 

완성된 책의 소장 가치와 활용

 

완성된 종이책을 손에 들었을 때, 화면 속에서만 보던 시나리오가 새로운 생명을 얻은 듯한 감각이 들었습니다. AI가 쓴 이야기는 여전히 AI의 것이지만, 종이 위에 새겨진 글씨와 표지, 제본 방식은 전적으로 저의 선택과 손길이었습니다. 그 결과물은 AI와 인간의 공동 창작물이자, 제게는 세상에 하나뿐인 기념품이 되었습니다.

이런 방식으로 만든 책은 여러 가지 활용이 가능합니다.

선물: 친구나 가족의 이름을 주인공으로 바꿔 AI에게 시나리오를 쓰게 한 뒤, 종이책으로 만들어 선물

작품집 시리즈화: 여러 편의 AI 시나리오를 모아 한 권씩 제작, 개인 창작 컬렉션 구축

전시: 북카페나 소규모 전시 공간에 디지털-아날로그 융합 작품으로 전시

 

무엇보다, 종이책은 시간이 지나면서 더 가치가 깊어집니다. 디지털 파일은 쉽게 잊히고 삭제될 수 있지만, 한 번 제본된 책은 책장에 꽂혀 오래도록 존재합니다. 종이를 넘길 때 나는 사각거리는 소리, 잉크 냄새, 페이지에 손끝이 닿는 촉감까지, 이 모든 것이 디지털 환경에서는 느낄 수 없는 경험입니다.

 

AI가 만들어낸 이야기를 종이책으로 출간하는 일은 단순히 매체를 바꾸는 작업이 아닙니다. 그것은 디지털의 무한성과 아날로그의 유한성이 만나는 지점을 만드는 창작 행위입니다. AI의 속도와 데이터 처리 능력, 인간의 감성과 제작 기술이 결합될 때, 우리는 세상에서 단 하나뿐인 창작물을 손에 넣을 수 있습니다.

다음 번에 AI가 멋진 이야기를 써주면, 화면 속에만 가두지 말고 종이 위로 꺼내 보세요. 당신만의 책이 탄생하는 순간, 그 이야기는 더 이상 ‘AI의 산출물’이 아니라 당신의 작품이 될 것입니다.